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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수 칼럼

넬슨 만델라에게 어른의 정치를 배우다

넬슨 만델라

넬슨 만델라, 진정한 리더를 만나자

본명 ‘넬슨 룰리랄라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진정한 어른,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 흑인과 백인의 악의 연대기를 끊어놓은 사람, 세계의 지도자로 항상 거론되는 사람 넬슨 만델라. 요즘 우리나라의 시국을 보며 언뜻 언뜻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흑인과 백인으로 찢어져 으르렁 거리지 않을 뿐이지 작금의 우리 모습은 좌파와 우파, 남과 북, 상류와 서민으로 나뉘어 철저하게 멀어지고 있어 그닥 남아공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촛불 혁명으로 새로운 정부를 새웠다. 시민들의 작은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빛으로 새로운 미래를 비추었고 그렇게 빛나는 미래가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먹고 살기는 더 힘들어졌고 좌파 우파는 이전보다 더 치졸하고 유치하게 싸우고 있으며 북한은 여전히 우리를 기만하며 이용해먹으려고만 하고 단 한발자국도 다가서지 않았으며 중국, 미국, 일본 같은 잘 이용해서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카드들은 느슨하다 못해 이젠 등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

 

 

넬슨 만델라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떠오른 것은 옥살이를 그렇게 오래하고 나왔음에도 정권을 잡고 피의 숙청을 하지 않은 그의 대담함과 평화를 위한 철학과 지혜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그의 포용력, 밸런스를 깨트려 판을 뒤 업는 정치가 아닌 쪼개진 연결하여 판을 더 크고 견고하게 만드는 그의 능력, 바로 그런 정치적 능력이 바로 지금 이 나라에 절실하기 때문이다. 넬슨 만델라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자

 

넬슨 만델라 탄생

넬슨 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남아프리카 연방 케이프 주 음베조 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2013년 12월 5일 항년 만 95세의 그래도 고생한 것 치고는 정말 오래 장수하였다. 그의 이름은 넬슨 만델라가 아니라 ‘넬슨 룰리랄라 만델라’인데 본래는 태어났을 때 아버지에게 받은 이름은 ‘룰리랄라’ 였다고 한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뭐 그런 뜻인데 조금은 장난꾸러기 같은 뜻이라 한다 (남아공 말을 알아야 말이지,,,) 그런데 넬슨(Nelson)은 초등학생 때 교사가 지어준 영국식 이름인데 그 이후 정식 이름을 넬슨 룰리랄라 만델라로 하였고 우리는 넬슨 만델라라 부른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금 남아공 사람들은 그를 애칭이자 존칭으로 '마디바(Madiba '어른') 혹은. '아버지'를 뜻하는 타타(Tata), 혹은 '훌륭하다', '위대하다'는 뜻을 지닌 '쿨루(Khulu)'로 부르고 있다. 그는 코사족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름 금수저) 학교를 다니며 왜 흑은 항상 나쁜 주인공으로만 교과서에 묘사 되어있는지 이해를 못하던 찰라, 그의 후견인인 달린드에보가 추장으로서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영혼의 울림을 얻어 억압 받는 흑인들을 위한 법조인이 되겠다 맘먹고 법대에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법대에서 주는 급식에 대한 불만을 투쟁도 했다가 그의 후견인이 정신 못 차린다며 결혼 시키겠다는 거 도망 다니며 위장 취업해서 숨어살기도 하고 뭐 그렇게 살았다. 여기까지는 금수저의 우여곡절 인생이야기 인데 진짜는 그가 그의 절친 올리버 탐보와 진정한 동지인 월터 시술루(아... 이 쪽 사람들 이름 너무 어려움)를 만나 아프리카 민족회의 (ANC)를 일으키면서부터 시작된다.

 

넬슨 만델라 세번의 결혼

참을 인으로 점철된 만델라의 초년기

당시 남아공은 백인의 정치 세상이었고 극심한 흑인 차별 정치로 멍이 들대로 든 상태였다. 그러나 만델라는 처음에 간디 같은 비 폭력주의의 평화적 투쟁을 하려 했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대놓고 법적으로 백인 흑인 신분 차별 법으로 통치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급기야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질을 해대는 정부를 보고 무장 투쟁의 길로 잠시 들어섰다. 이때 조직 이름이 ‘민족의 창’ (Unmkhonto we Sizwe)이라고 한다. 왜 꼭 이런 것에는 창이 거론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잠시 그도 파이터가 되어 무장 투쟁, 정부를 상대로 테러? 등도 일으킨다.

 

 

만델라 효과

그러다 잡혀 감옥엘 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만델라가 감옥에 안 갔다면 오늘날의 위대한 지도자 만델라는 탄생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이때 그는 종신형을 받고 무려 27년이라는 긴 시간을 감옥에서 썩게 되는데 여론의 보도와 때마침 같이 투옥된 이들의 장례식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만델라가 옥중에 사망했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대중의 집단 착각 ‘만델라 효과’란 말이 이때 나온 말이다. 아무튼 외압과 국내 여론을 어쩌지 못하고 1990년 당시 대통령 클레르크는 그를 석방했고 출소한 만델라는 다른 정당들과 연합하여 아프르트헤이트 정부를 철폐 시키고 흑인에게 투표권을 안겨줘 노벨 평화상도 타고 27년 옥살이 중에 익힌 내공으로 남아공을 이끌어갔다.

 

넬슨 만델라 ANC

포용과 화합의 정치 인생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 동안 흑인을 탄압했던 정부의 백인들은 도망가기 바빴는데. 이때 만델라의 포용과 화합의 정치가 빛을 바란다. 그는 백인들을 탄압하거나 내 쫓거나 하지 않았다. 그 동안의 그들의 더러운 짓들을 철저하게 조사를 하긴 했는데 그들을 처벌하거나 공직에서 내 쫓진 않았다. 이른바 ‘조사를 하되 잊지는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완전한 신의 한 수여서 기존의 경제적 기반을 쥐고 있던 백인들의 해외 이탈을 막았고 오히려 백인의 지지까지 얻어 정권 교체로 인해 결국 다시 한쪽으로 기울며 피의 숙청이 난무할 남아공을 포용과 화합의 정치로 이끌었다.

 

 

또한 외부로는 훌륭한 외교를 펼쳐 국제 사회의 원조와 지지를 얻었는데 이것은 정지 지도자가 얼마나 그 나라를 잘 살게 만들어 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작금의 우리나라를 보면서 넬슨 만델라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는 1999년 그의 정치 투쟁 동료였던 고반 음베키의 아들인 타보 음베키 (아 정말 이름들 하고는...어렵다)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기에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만 멈출 줄도 아는 진정 지혜로운 지도자였던 것이다.

 

남아공의 진정한 지도자 만델라

넬슨 만델라의 가르침들

그의 행동과 말은 언제나 우리를 배움의 길로 인도하는데 다양한 그의 어록을 소개해본다. 언젠가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오프라가 "어떻게 감옥 생활을 하면서 복수심이 아닌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만약 내가 감옥에 있지 않았다면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과제, 즉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옥에 앉아서 생각할 기회는 바깥 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기회였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정말 이것이야 말로 깨우친 자의 말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한지 다시 생각해본다. 문정권이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지금은 이전 정권들의 지뢰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고 대외 적으로도 매우 급박하고 어지럽다. 그러니 하나로 뭉쳐 부국강병을 향해 나아가도 모자란 마당에 한술 더 떠 나라는 좌우로 상하로 나뉘어 싸우기에 바쁘다. 그러니 초조한 마음으로 IMF가 다시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나 하고 있는 국민들은 우왕좌왕할 수 밖에...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했던가? 형식만 갖춘 대통령, 정당 대표 따위가 아닌 진정한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넬슨 만델라를 추억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어록을 전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감옥은 나의 성장을 위한 시기 넬슨 만델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를 치러 왔으며,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1962년 11월, 노동자들의 파업을 유도한 혐의로 받은 재판 중 발언.)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한 일들을 끝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히 영면할 수 있다. 나 스스로 그런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영원의 시간 속에 잠들 것이다."

 

"삶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섬에 있다. (1994년에 출판된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Long walk to Freedom)"에서)

 

"억압받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억압하는 사람도 해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다면 남에게 나의 자유를 빼앗긴 것처럼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내가 감옥에서 풀려나 왔을 때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둘 다를 해방시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었습니다."

 

"나는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나는 주춤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도중에 발을 잘못 내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커다란 언덕을 올라간 뒤에야 올라가야 할 언덕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비밀을 알았습니다. 내가 가야 할 머나먼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감히 꾸물거릴 수가 없습니다."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에서)

 

"누구도 피부색, 배경 또는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도록 태어나지 않는다. 미워하게끔 배운다. 미워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사랑하는 것도 가르칠 수 있지 않은가. 사랑은 미움보다 더 자연스레 사람 가슴에 다가온다."

 

"가장 위대한 무기는 평화입니다."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만약 ANC가 여러분에게 ‘아파르트헤이트’ 정부가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한다면, 여러분은 아파르트헤이트에 싸웠던 것처럼 ANC와 싸워야 합니다."

 

"나는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노력하는 한 노인일 뿐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았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가 우리 삶의 의미를 결정할 것이다."

신세기 정기수 '넬슨 만델라 어른의 정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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