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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수 칼럼

박효신 사기 사건 그리고 안타까운 가요계 고질병 [정기수 칼럼]

[정기수 칼럼  '박효신 사기 사건']

박효신 사기 사건

박효신 사기 사건을 접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 박효신 사기 사건에 대한 조사, 법적 결말이 안 나온 상태입니다. 그러니 박효신이 무죄다 혹은 박효신을 고소한 그 사업가가 ‘명예훼손’을 한 것이다, 안 한 것이다 같은 결론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박효신 사기 사건이라고 요즘 떠들썩한 사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해보고 또 그와 연계되어 이전의 사건들도 수면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기에 박효신 사기 사건 이전, 박효신이 휘말렸던 사건들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 가요계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겠네요 바로 박효신 사기 사건에 대한 내용부터 파악해보도록 합시다.

 

박효신 소속사 계약 사기 사건의 전말 (? 말은 없음)

박효신 사기 사건 언론 보도

박효신 사기 사건의 내용 정리

1차적으로 시끄러워진 것은 박효신을 사기로 A씨가 고소한 부분부터 시작됩니다. 사기 고소의 내용은 (뉴스 보도에 따른 내용) 법률사무소 우일은 "2019년 6월 27일 오전 11시 서울 서부지검에 사업가 A씨를 대리하여 가수 박효신을 사기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고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효신이 2014년 11월경부터 전속계약을 미끼로 A씨로부터 자신이 타고 다닐 2억7000만원 상당의 벤틀리 승용차, 모친이 타고 다닐 6,000만원 상당의 벤츠 승용차를 제공했다. 또 1,400만원 상당의 손목시계 및 총 6차례에 걸쳐 5,800만원 등 합계 4억원 이상을 편취했다는 것입니다.

 

이어 OSEN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박효신을 위해서 엔터 법인을 만들었고. 법인카드 사용내역도 있으며. 차량, 시계, 명품 등을 구입한 것은 물론 현금도 지급, 지급한 차량의 과태료까지 내주기도 함. 수개월 차량을 사용한 후 돌려줬다고 밝히며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단순히 개인적인 친분이라면 법인 명의까지 만들어서 거액을 쓰겠나 라며 박효신 측과 지난해 12월까지 접촉한 내용이 있었고. 몇 년 전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12월에 연락이 끊기면서 고소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에 박효신과 박효신의 현재 소속사인 글러브엔터테인먼트 측은 이를 강하게 부정하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박효신은 전속계약을 조건으로 타인에게 금전적 이익을 취한적이 없다고 해명하였습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박효신이 2016년 젤리피쉬와의 전속 계약이 종료될 즈음 사업가 A씨와 함께 만나며 A씨에게 젤리피쉬와의 소속계약이 종료되면 A씨의 소속사와 계약을 하겠다는 언질이든, 어떤 식으로든 간에 의사를 표명하며 계약 이전에 자동차와 시계 등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게 알고 잘해주다가 박효신이 지금의 글로브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해버렸고 이에 박효신과의 계약이 날아간 A씨는 가뜩이나 열 받는데 박효신이 연락을 끊기까지 하니까 이것을 사기라고 판단하고 사기죄로 고소를 한 것입니다.

 

이것이 요즘 붉어진 박효신 사기 사건 내용의 전부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거기에 언론의 부채질이 더해지면서 박효신의 예전 소속사와의 전적들이 언급되며 이야기는 실체와 다르게 마치 박효신의 소속사와 관계들이 우리가 모르는 뭔가 심미한 저 깊은 곳에 자리한 뒤통수를 칠법한 이상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커지고 왜곡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사건은 그렇게 큰 사건도 아니고 박효신에게 큰 타격을 줄 사건도 아닙니다.

공연전 박효신 사기 고소

 

지금부터는 이번 사건에 대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분석입니다.

박효신 소속사 계약 문제

1. 박효신은 정말 계약할 생각이 없었을까?

금전적인 제공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히지 않고 또 돌려 주었다는 것을 보면 팩트는 ‘뭔가 받기는 받았다’ 는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나게 잘못된 것일까요? 연예인들에게 있어 활동하면서 전속 계약은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탐색하고 친분이 있는 엔터 사장들과 계약 관련 이야기도 하고 추진도 하고 또, 안되기도 하고 다 그러는 것이지요 어느 날 갑자기 한자리에 모여 너희가 조건이 좋으니까 너희랑 할게! 라며 계약하는 게 더 웃기죠. 당연한 이야기 인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박효신이 정말 계약할 의사가 없이 차도 받으며 그렇게 편취했을까요? 박효신이? 연예계 짬밥이 얼만데? 사기칠 요량으로?

 

2. A씨는 정말 계약에 대한 약속, 믿음만 있었을까?

A씨는 박효신과의 계약을 위해 법인까지 설립했다고 합니다. 어린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법인을 세운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만들고 나면 계속해서 돈만 나가는 골치덩어리가 되기 일수죠. 그런데 사업가라는 분이 과연 그러한 믿음만 가지고 법인을 설립했을까요? 제 생각엔 분명 박효신과의 전속 계약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A씨는 사업가라고 합니다. 사업가라면 계약을 어떻게 할지, 해서 어떻게 이윤을 남길지, 향후 어떻게 사업을 진행할지 계획을 세우고 진행했으리라 충분히 예상되는 바 입니다. 박효신과 박효신을 고소한 A씨는 분명 계약 조건에 해당하는 향후 계획에 대하여 논의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박효신과의 최종 협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난항을 겪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고 생각됩니다.

 

3. 둘 다 서툴게 관계를 끝낸 것은 아닐까?

종합적으로 유추를 해보자면 A씨는 박효신을 잡기 위해 계약 이전에 장치를 건다는 심정으로 밑밥을 뿌린 것이 지금 고소의 내용인 자동차와 시계 등을 줬다는 내용일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박효신은 진지하게 계약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다른 기획사와 계약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양쪽 다 서툴게 관계를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A씨는 밑밥을 뿌렸는데 정작 계약은 다른 곳에 빼앗기는 서툰 대응을 했고 박효신은 다른 기획사와 계약하기 전 이전의 관계에서 문제될 것은 확실하게 정리를 했어야 했고 더 나아가 A씨는 박효신에게도 자신에게도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고소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입니다. 막말로 고소한다고 박효신이 기획사를 바꾸지도 않고 오히려 절대 A씨에게는 안가야 하는 이유를 만든 것이란 거죠.

 

4. 결론은 괘씸죄다.

A씨의 입장을 생각해봅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A씨는 이 고소를 통해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엔터법인을 세운 사람이 이렇게 해버리면 다른 가수도 영입하기 힘들어지는 건 자명합니다. 또, 고소해서 승소를 한다고 해도 박효신에게 얻어낼게 별로 없습니다. 상대는 세간에 가장 많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박효신입니다. 파장을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언론에 보도된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연락이 끊겼다”입니다. 그렇죠 괘씸죄입니다. 이것은 이윤을 위한 법적 대립이 아닌 괘씸죄라 사료됩니다.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박효신의 이전 소속사와의 갈등과 고소 사건들을 보면 하나의 관통하는 맥락이 있습니다. 바로 ‘입장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박효신은 상당한 노력으로 실력을 발전시키며 대중 가요를 넘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거물 가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성격이 안 맞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시스템적인 문제입니다.

 

수익구조의 시스템과 예술의 경계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보면 대중가수들이 뮤지션으로서 자랄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연히 본질에 충실해 퀄러티 있는 음악을 제공하고자 하는 박효신 같은 가수는 소속사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첫 번째 문제 국내 산업 파이가 너무 작다

 물론 대형 기획사 SM이나 BTS를 키운 빅히트 같은 곳이야 국제 시장을 넘보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일반 기획사들은 여전히 국내에서 수입을 내야 하는데 너무나 시장 파이가 작습니다. 그러니 신인 발굴과 가수 하나를 키우기 위한 투자 비용을 회수하려면 소위 잘나가는 가수를 미친 듯이 굴려야 합니다.

 

그들의 휴식시간, 음악을 위한 재충전, 양질의 공연을 위한 준비시간 따위 확보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것은 기획사를 편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기획사들이 처해있는 상황입니다. 당장 잘나가는 가수가 행사 하나, 억지 광고하나 안 찍어주면 연습생부터 줄줄이 손가락 빨게 생겼는데 안 굴리게 생겼습니까? 물론 수익구조가 좀 안정됐는데도 욕심 내어 굴리는 곳도 많죠 하지만 그 역시도 신인가수 몇몇만 실패해도 다 날라갈 정도의 예치금밖에 안됩니다.

 

 두 번째 문제 언더그라운드 시장의 전멸

대중문화도 엄연한 예술의 한 축입니다. 다른 예술과 다른 점은 사업성을 더 진하게 갖는다는 것이죠. 이 둘의 마찰은 어쩌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한쪽은 돈을 벌어야 하고 한쪽은 예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야기되는 문제는 대중문화 특히 가요에 있어서 사업적으로 씨앗 자체를 키우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 되 버렸다는 것입니다.

 

연습생으로 10년동안 있었느니 어쨌다느니 이런 이야기는 그냥 열정으로 받아들일 문제가 아닙니다. 그만큼 엔터 쪽에서 신인 발굴을 위해 쏟아 붓는 돈이 장난이 아니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만큼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의 양 어깨는 무거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언더그라운드 활동이 활발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통해 끼 있는 친구들이 활동하고 인지도도 얻고 가수가 될 준비가 된 상태에서 기획사와 일을 하기 시작한다면 불공정한 계약이 나오지 않아도 되고 기획사를 먹여 살리는 기존 선배들이 무리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는 거의 전멸입니다. 노가다를 뛰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언더그라운드 시장.... 그것은 사실상 시장의 기능을 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시장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수를 하겠다는 어린 친구들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이죠.

 

 

마무으~리 

박효신의 예전 소속사와의 갈등 문제들을 보면 박효신의 개인적 성품을 떠나서 뮤지션, 가수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예술적 완성도와 기획사의 생계 사이에서 싸워왔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박효신이 가수로서 자립도가 생겨서 이런 일이 안 생기려니 했는데 또 일이 불거지니 안타깝습니다. 막상 큰 문제도 아닌 박효신 사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박효신 같은 가수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기수 칼럼  '박효신 사기 사건' 끝 ]

 

 

▼ 아래는 박효신의 야생화 이전까지의 박효신 스토리 요약입니다. 박효신의 이전 상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일 될까 하여 올려놓습니다.

박효신 스토리 압축◎

1부 가수 박효신의 탄생

박효신은1981년 12월 1일 대한민국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박효신은 어릴 때 노래를 좋아했던 아이였다. (뭐 당연한 거지만요) 박효신은 어렸을 때부터 가수의 재능을 보였고 주변 사람들도 어린 그를 인정하였다. 박효신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미 가수가 되기로 정하고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시험하기 위해서 각종 콘테스트에 도전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나이에 박효신은 대상을 비롯하여 많은 수상을 하였그 그 이후 박효신은 곧바로 가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2부. 일찍 찾아온 위기

박효신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음반기획사와 계약하고 1집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소속사는 재정난으로 폐업하게 되었고 소속사의 소개로 다른 기획사의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 기획사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없었으며 오로지 돈을 버는 것에만 열중했다. (여기서부터 박효신은 소속사 갈등의 역사가 시작!!) 크게 실망한 박효신은 다시 그 기획사를 탈퇴했는데 그 이후 어느 날 그 기획사는 그에게 계약 위반을 이유로 돈을 요구했고 박효신은 매우 실망하고 가수의 꿈을 잠시 포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형의 권유로 박효신은 다시 어떤 소속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소속사의 이름은 신촌뮤직! 그 당시 소속사의 사장으로 있던 사람이 지금도  대단한 가창력과 열을 선보이는 가수 권인하였다. (같이 소속되어있던 박화요비는 요즘 뭐하나?)

 

그 이후 박효신은 노래 연습을 아주 많이 하며  지냈다고 하는데 그 당시 그의 교과서는 바로 루더 밴드로스였다고 한다.

박효신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다른 학교의 실용음악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웃긴건 그 당시 그 과에 있던 학생들 중 지금 매우 유명한 가수가 된 ‘환히’ 가 있었다. 환희의 증언에 의하면 그 당시에도 박효신의 노래실력은 차원이 달랐다고 한다. (그랬겠죠??)

 

 

3부 가수 박효신의 탄생

 1999년 11월 4일 라디오 방송을 첫 출연하였고 다음달에 첫 음반 《해줄 수 없는 일》을 발매하였다. 데뷔 후 그의 가창력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소라 언니의 공이 큼) 결국 데뷔 음반이 44만 장의 판매를 달성하며 2000년도 음반 판매량 15위를 기록했고, 물론 그 이후 각종 어워드에서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승승장구했던 박효신에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박효신은 다시 한번 소속사와 계약을 파기했으며 법적 소송이 진행되었다. 기나긴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 협의를 하였고 결국 화해를 했다. 박효신은 전 소속사에게 계약금을 돌려줬고 이후 박효신은 전속 계약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박효신은 소속사들과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물론 그 당시 그가 낸 앨범들은 모두 히트를 하였지만 계속되는 분쟁으로 인해 박효신은 지쳐갔다. 이 시기는 그에게 있어 정말 기나긴 어두운 시기였다.

 

4부 새로운 시작

박효신은 소속사 젤리피쉬와 계약을 하며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 이후 만든 앨범들도 모두 히트를 했지만 박효신은 곧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이 기간에 그의 팬들은 그를 무척 그리워하게 됐는데 이 기간이 전화위복이라 팬들은 말한다. 남자 발라드 가수로서 갖기 힘든 남자 팬들을 확보하였고 긴 기다림 속에서 그의 군 생활 활약한 내용들이 전해지며 실력에 대한 평가가 점점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리 제대 후에도 박효신은 긴 공백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비상을 위한 도움닫기였다. 박효신은 군대에서 정재일이라는 실력 있는 음악가를 만났고 그와 함께 최고의 노래를 만들었다. 바로 박효신의 역사에서 가장 사랑 받은 노래 야생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