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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임재범 레전드 ‘아시아나’ 안타까운 전설 [음악 이야기]

임재범 레전드 아시아나 이야기

 

[음악 이야기 레전드 시리즈  임재범]

 

임재범과 레전드 락밴드 아시아나, 세계를 향한 도전과 좌절

음악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누구를 다뤄야 하나 고민했다. 우리나라에는 BTS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BTS의 글로벌 인기에 놀라기는 했지만 싸이가 한방 터트려서 전율까지는 아니지 않는가? 그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물론 높이..아주 높이 산다.

 

 

임재범을 '나가수' 따위로 평가하지 말자!

어찌됐든 이번에는 임재범 행님을 다뤄보기로 했다. 물론 임재범 행님이 노래를 잘하는 건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굳이 여기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임재범이란 가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의 행보에 있어 근래 가장 두드러진 건 나가수가 맞다. 조금씩 사그라지던 인기도 그 때문에 훅 올라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임재범을 아는 사람은 나가수 따위로 평가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가수에 임재범 행님이 출연했을 때 속으로 ‘왜 굳이 저런 댈 나가시나’ 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는 도대체 뭔 소리인가 할 것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임재범이란 가수, 그 위대한 음악 행보에 대해서 알아보자

 

임재범의 탄생과 데뷔 이야기

임재범 레전드 시리즈 그의 생애

임재범은 1962년 10월 14일 생, 올해로 58세이시다. (어른이다 함부로 나불대지 말자)

그의 어린 시절, 그리고 동생,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진 게 없다. 임재범도 말을 아끼는 것 같다... 패스하자. 어쨌든 그의 음악 데뷔는시나위 맴버로 정식 데뷔 하셨다. 당시 서울 고등학교 동문인 신대철과 함께 시나위 1집에 참여하여 그 유명한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르며 정말 지대로 데뷔하셨다.

 

그 당시 그 앨범은 크게 히트하고 10만장 이상 팔렸는데 락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히트였다. 후일담으로 이 앨범의 준비가 너무 짧았고(2주?) 당시 임재범 행님은 녹음할 때 감기까지 걸리셨기에 완성도 문제로 음반사와 많이 실갱이를 벌였다고 한다. 감기 걸린 게 그정도다...

 

전세계와 맞짱 뜨는 임재범의 전성기

시나위 1집 이후 그는 1988년 이지웅, 손무현과 함께 그룹 외인부대를 결성했다 (그나저나 손무현 옹은 지금 어디서 뭘 하실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당시 락 밴드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록 인 코리아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나오기 힘든 프로젝트였는데 그 당시 락 팬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이벤트였다.

외인부대 임재범과 손무현 옹

 

외인부대 줄리 열창하시는 임재범 행님 (옷은 좀...)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현 백두산의 기타리스트인 김도균 행님과 임재범 행님이 만나버렸다는 것이다. 참고로 김도균 행님은 요즘 ‘불타는 청춘’에도 나오고 많이 구수해졌지만 이 당시 김태원, 신대철과 함께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그야말로 기타의 신이였다. 그렇게 신들이 만나버렸으니 일이 안 벌어지겠나~

 

이때 김도균의 러브콜에 대뜸 OK를 하고 홀연히 영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 ‘SARANG’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한다. 이 둘이 만났으니 영국인들 안 통했을까. 그들은 영국에서 호평을 받았고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문제의 ‘아시아나’ 밴드를 결성하고 앨범 자체를 세계를 겨냥하여 영어로 제작해버렸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이들의 앞선 행보를 감당할만한 여건이 되질 못했다. 그래서 결국 그 명반인 아시아나의 1집 활동은 일본의 전설적인 락 밴드 라우드니스의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선 이후로 이렇다 할 활동도 못하고 해체되어버렸다. 변변한 공연 영상 자료 조차 남아있지 않을정도다! 하지만 이 앨범은 오늘날 재평가 받으며 한국 헤비메탈의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는 앨범으로 남았다.

 

아시아나 시절 꽃미남 행님들 임재범(왼쪽) 오른쪽 끝(김도균)

 

아시아나 앨범의 the same old story (팬티 준비하고 듣길)

이때 상처가 너무 깊었을까? 임재범은 1991년 솔로로 데뷔하여 ‘이 밤이 지나면’을 내고 밤이 지나 사라져버리고 역시나 자신은 너무 상처받았다며 2집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내고 또 잠적하고 또 얼마 있다 ‘어찌 합니까~~’를 외치며 ‘고해’를 부르고 방송활동 따위 거의 안하며 지냈는데 이 기간은 마치 앨범은 내지만 난 노래를 부르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다소 어두웠다. 그의 몇 안 되는 인터뷰의 글들을 보면 그때 락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리고 이 나라의 현실에 매우 힘들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영화 '동감'에 삽입된 OST곡 ‘너를 위해’를 발표하고 영화보다 음악을 더 띄우시더니 마침내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화재를 불러일으키며 급기야 레전드 중에 레전드 윤복희 선생님의 ‘여러분’을 불러서 온 대한민국 여러분을 환호케 했고 그 이후에는 콘서트 투어도 하시고 ‘바람의 전설’이라는 예능도 아닌 것이 음악 프로도 아닌 ‘바람에 실려’를 장장 9회에 걸쳐 촬영도 하시고 ‘히든 싱어’니 ‘불후의 명곡’이니 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출연하시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계신다.

 

임재범이 레전드로 불리는 이유

임재범은 지난 과거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가수로서 활동 내용이나, 인기도 측면에서 레전드라 하긴 힘들다. 아니 활동 내역을 보면 확실히 레전드로 불리우기 힘들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한국의 남자 싱어를 말할 때 레전드로 주저 없이 임재범 행님을 꼽을까?

 

임재범이 레전드인 이유 첫번째 ‘테크니컬

그의 가창력 때문이다. 노래를 많이 한 사람들, 연구를 많이 한 사람들은 임재범의 보컬 능력에 대해 모두다 입을 모아 말한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나올 수 없는 괴물 보컬이라고 말이다.  왜그럴까? 일단 테크니컬 적인 요소만 보더라도 요즘 최고로 인정받는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박효신도 그 앞에서는 꼬리를 내릴 정도로 이미 그 옛날 테크니컬 적인 부분은 그냥 밑에 깔고 초월해서 불렀다.

 

임재범의 노래를 불러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노래마다 개같이 힘들다. 정말 파워풀하고 웅장한 베이스 소리를 그렇게 내면서 한편으로 그렇게 높은 음역대의 면도날 창법을 구사하는 보컬이 몇이나 있을까...흉성? 두성? 그 딴건 이미 초월했다. 중저음의 걸걸한 성량은 흡사 메탈리카의 제임스를 떠올리게 하고 면도날 같은 고음 성량은 흡사 주다스프리스트의 롭헬포드 행님과 같았다.(쬐금 오버인가??) 들려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재범 행님은 처음에 상당히 얇은 미성이였다고 한다. 믿겨지는가? 노력으로 소리를 그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아무튼 이런 것이 가능한 괴물 보컬이 우리나라 같은 작은 땅덩어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참 고마울 따름이다.

 

임재범이 레전드인 이유 두번째 ‘카리스마

락을 하는 사람. 특히 보컬은 분위기가 먹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임재범 행님의 카리스마란... 도대체 이 부분에 대해 누가 반기를 들것인가? 심지어 그는 달달한 발라드를 부를 때조차 카리스마가 넘친다. 반박할 수 있는가? 아래 영상 자료는 임재범의 외인부대 앨범 중 ‘줄리’라는 노래다. 쇼프로에서 이런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는 레전드다.

 

 

 

임재범이 레전드인 이유 세번째 ‘감성

임재범 행님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보컬로서의 완성도가 이미 천상에 닿아 있는 것은 들어서 알겠는데 그것으로 설명이 안 되는 감성이 있다. 현재 내놓으라 하는 가수들의 노래, 특히 감성 충만한 양반들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그 가수가 그 노래에 젖어 들어 노래를 부르는 듯한 감성을 느끼는데 임재범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느낌이... 그냥 임재범이 그 노래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렇게 월등한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으면서도 테크닉 따위 감성을 위해서는 집어 던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뭐 저만의 생각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하여튼 그렇다.

 

 

 

임재범이 레전드인 이유 네번째 ‘도전

사랑이란 밴드도 그렇고 아시아나도 그렇고 그 옛날 검은 눈의 한국인이 영국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건 어느 날 영국남자가 불쑥 한국에 와서 김치 만들어 팔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좋은 평까지 받았다. 이때 만약 우리나라가 조금만 더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발달했다면. 그래서 그들이 제대로 활동하게 할 수 있었다면. 분명 이들은 뭔가 일을 내도 반드시 냈을 것이다. 그럴만한 괴물 같은 실력이 있었고 그런 배짱도 있던 사내들이었다. 아마도 그랬다면 오늘날 이렇게 락이 무너진 대한민국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임재범 이야기 마무리

이렇게 가수 임재범의 데뷔 초 스토리와 그가 레전드인 저 나름의 분석을 해봤습니다. 그냥 찬양하는 글을 계속 쓰라면 쓰겠는데 그럼 너무 팬레터 같아지니 참겠습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딱 임재범을 두고 하는 말 같지 않나요? 그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이야기가 더 찬란했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지금 그의 나이가 너무나 아까울 따름입니다. 임재범의 레전드를 이을 또 다른 레전드가 탄생하길 바라며 정기수의 음악 이야기 임재범 편 마칩니다.

 

[음악 이야기 레전드 시리즈 – 임재범, 끝]